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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eeun G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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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d eyes

23 Feb 2021

Reading time ~3 minutes

로슈릭시

오드아이

등과 허리에 연결된 케이블로 전력공급을 받으며 충전 중인 트릭시 앞에 마주 서있는 카로슈… 트릭시를 보며 예전에 전해준 사진 중에 타루가 찍힌 사진만을 빤히 보던 트릭시가 카로슈에게 건넸던 말들을 떠올리고 있다든가…

기억 속의 릭시는 로슈의 물음에 쳐다보던 사진을 내보이며 말하는 걸로 시작해요. 몇 주 전에 일방적인 침입으로 마주친 적이 있는 자인데 끝내지 못했더니 그 이후로 이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고. 하지만 트릭시는 그것이 분함과 미련이 아니었다고 해요.

레티시아, 나는 이 사람이 나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당신이 나의 뺨을 어루만질 때 느끼는 감정을.
이 사람도 나로 인해 인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로슈는 뜻밖에 아주 구체적이고 서정적인 릭시의 감상에 놀라서 그만 “좋은 생각이네”라며 멋쩍게 대화를 마치고 말았는데, 곱씹을수록 신기하고 신경 쓰이는 거예요. 릭시의 감정은 어쩌면 숱한 전투로 무뎌진 자신의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로슈는 어두운 천장을 쳐다보며 그날의 일을 떠올리다 결국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는 바람에 이렇게 지금, 충전 중인 릭시 앞에 서 있게 된 거죠… 릭시를 살펴보기엔 자신이 무얼 궁금해하는지도 감이 오질 않지만.

로슈는 구부정하게 서 있는 릭시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천천히 무릎을 꿇었어요. 그리고는 릭시의 묶인 머리카락을 오른손 손가락들 사이로 흘려보고, 감긴 눈꺼풀의 속눈썹을 엄지로 쓸어보고. 그러다 이 아이와 자신은 무엇이 다를까 하며 무심결에 왼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쓸어봐요.

새삼 차가운 자신의 왼손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뒤따라오는 생각은 릭시를 향한 호기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어요.
이 차가운 쇳덩이를 달고 있어도 여전히 내 왼손은 끊임없이 아프고, 나는 당장이라도 목을 그어 죽을 수 있기에 살아있음이 틀림없는데 너는 과연 나와 얼마나 다른가, 하고 말이죠.

내가 이따금씩 느끼는 왼손의 고통처럼 너 또한 잃어버린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욱신거리지 않는지,
그것이 사진 속의 그 아이라면 네가 가장 아플 곳은 심장이 아닌지.
카로슈는 강한 동질감과 연민이 가득한 물음의 답을 트릭시에게서 듣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요.

그래서 고개를 돌려 천천히 릭시의 품에 기대고는 어두운 방안의 백색소음과 자신의 숨소리도 희미해져 갈 때쯤,
몸에서 미미하게 느껴지는 진동에 규칙성을 듣게 돼요. 로슈는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며,

네가 잃어버린 건 그 아이가 아니라 네 심장이었구나.
네 갈증은 너를 잊지 말라고 몸부림을 치던 것이었구나.

로슈는 릭시가 눈을 뜨길 바라는 듯 얼굴을 한참 보다가 다시 머리를 품에 기대요.
역시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공간 구석을 울리는 기계음은 마치 네가 거기 있다고 기세를 올리는 것 같아. 그런 공기를 데우는 소리에 공명하게 되는 것은 나도 같은 처지라서 그런걸까. 아직 여기 숨을 쉬고 있어. 아직도 꿈을 꾸고 있고,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고. 이런 걸 알아주길 바라는 것 같지.

..눈을 떠준다면 좋겠는데. 네 깊은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게. 바다 건너 고향을 그리워하는 푸른 눈과, 그곳에서 내일을 기대하며 보던 석양을 담은 다홍빛 눈이 내가 앞에 있음에도 저 멀리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어. 네 동생을 눈에 담을 수 없어 그저 함께 보았을, 바다에 저무는 태양만을 기억하듯 되새기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너무나도 찬란해 나도 모르게 내 고향을 떠올리고 말아. 그래. 이런 걸 동병상련이라고 하던가. 네 나라와는 다른 곳이더라도 그곳의 한결같은 태양을 그리워함은 다름이 없겠지.

그러니 네 슬픔에, 네 어둠에 닿을 수 있게 해주겠어? 아무도 모르게 묻어두고 모른척하던 내 그리움을 너에게만이라도 풀어줄 수 있게. 그렇게 네 공허한 어둠에 내 추억을 하나씩 풀어놓으면 언젠가 내 말을 빌려, 네 동생에게 그간의 그리움을 전해 줄 수 있을 테니. 이렇게나 너를 그리워했다고.

… 누가 너를 그저 한낱 로봇이라고 하던가. 이리도 살아있는데. 이리도 꿈을 꾸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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